지난 FST 준결승전에서 G2에게 3대 0으로 패배를 한 이래 젠지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롤드컵에서는 무기력해도 그간 LCK 정규 시즌만큼은 독보적인 1황의 위치에 있던 젠지다. 아무리 룰러 사건으로 인해 경기력이 일부 하락했다고 하지만 현재 3승 3패를 기록 중인 젠지의 모습은 충분히 낯설다.
과연 젠지는 올 시즌 왜 이렇게 다른 모습이 된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까.

- 룰러 사건의 여파
누구나 인정하듯 현재 젠지는 100% 컨디션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조세 회피’ 사건의 당사자인 룰러 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룰러는 젠지 내에서 최고참 급 선수다. 당연히 이런 분위기가 팀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리 없다.
실제로 집에서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좋지 않은 분위기라면 집 전체의 분위기도 좋지 않아진다. 여기에 젠지라는 팀 자체의 무대응도 유저들에게 질타를 받는 상황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다른 선수들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다행스러운 일이겠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사진출처: 라이엇 게임즈)
이는 실제 게임에서 아주 미묘한 차이로 드러난다. 특정 상황에서 순간적인 판단이 조금 늦어진다거나 하는 등의 행동으로 말이다. 결국 과거에는 가능했거나 충분히 할 만한 것들이 현재 상황에서는 ‘되지 않는’ 일들이 발생한다.
- 기인의 과부하
기인은 젠지에서 가장 굳은 일을 많이 하는 선수다. 로밍도 하고, 적은 자원으로도 버티며, 팀을 위해 판을 깔아주기도, 심지어 이러면서 후반 캐리를 하기도 하는 선수다. 하지만 최근 경기에서는 기인이 상당히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기인의 폼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100% 경기력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수준도 결코 아니다.
그러나 팀 전체가 약간의 폼 하락이 있는 상황이고, 바텀 라인이 이전과 같은 힘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기인에게 과부하가 걸렸다. 이전보다 많은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사실 ‘캐니언’도 마찬가지다. 캐니언 역시 기인처럼 현재 상황에서 더 많은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적어도 경기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이렇다 보니 기인과 캐니언이 다소 무리를 하거나 보다 모험적인 플레이를 하게 되는 비중이 높아졌다. 그만큼 유저들이 보기에 어이없이 죽는 플레이가 간간히 나오고 있고 말이다. 과거였다면 굳이 하지 않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플레이를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는 것이다.

기인은 충분히 할 만큼 해주고 있다(사진출처: 라이엇 게임즈)
그렇다면 기인과 캐니언은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은 것일까. 이는 젠지의 쵸비 중심 플레이 구조 때문이다.
젠지는 전형적인 ‘쵸비’의 팀이다. 물론 기인이 간간히 캐리를 하는 상황이 나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젠지의 플레이는 쵸비가 경기를 집도하는 상황이 핵심이다.
쇼메이커’나 ‘페이커’ 같은, 미드에서 메이킹과 로밍 등 다양한 플레이를 해 주는 선수들과 달리 ‘쵸비’는 순수하게 이러한 부분보다는 라인전과 무력에 중점을 둔 플레이를 한다. 쇼메이커나 페이커가 팀의 성장에 더 중점을 둔다면 쵸비는 자신의 무력 상승에 더 힘쓴다는 말이다.
이것이 팀 차원에서 장점을 살리기 위해 의도된 부분인지, 아니면 쵸비의 플레이 스타일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는 내부자가 아닌 이상 확실히 알기 어렵다. 어쨌든 젠지는 이러한 구조를 최근 꾸준히 유지해 왔고, 결과적으로 LCK 내에서는 최강자가 됐다.
통상적으로 미드는 LOL의 중심이라 불린다. 그만큼 해야 할 것도,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자리가 바로 미드다.
젠지는 이러한 미드가 해야 하는 일들 중 상당 부분을 기인과 캐니언에게 할애했다. 그만큼 쵸비는 더 공격적인 측면에 집중할 수 있게 됐고,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인 무력을 폭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무력 측면에서 쵸비가 전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팀 차원으로 밀어주니 더더욱 신 급의 전투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쵸비가 무력만큼은 전 세계 최강이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사진출처: 라이엇 게임즈)
하지만 이는 필수적으로 기인과 캐니언의 전투 능력 저하로 이어졌다. 자신이 원래 해야 하는 롤에 여러 부분이 추가된 셈이니 상식적으로 더 잘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덕분에 캐니언은 자원도 크게 먹지 못하고 할 일도 많아지면서 결국 ‘평범한 정글러’처럼 보이는 상황이 됐다. 받지 않아야 할 ‘실력 문제’도 거론되고 말이다.
기인이 대단한 것은 이 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기인은 한 사람 몫 이상을 충분히 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팀 전체의 폼이 하락하면서 기인과 캐니언이 해야 하는 일이 늘었고, 결국 모든 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간간히 구멍이 나거나 ‘어쩔 수 없는’ 무리한 플레이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는 최강이라 불리던 젠지 상체의 약화로 이어졌다. 결국 상체의 안정을 기반으로 한 쵸비의 플레이 역시 흔들리게 됐고, 쵸비 역시 이전보다 무딘 칼날이 됐다.
심지어 바텀은 이전보다 나쁜 상황이고, 상체의 우위에서 오는 방어막까지 사라졌다. 결국 어느 정도 형들의 도움을 받아 괜찮게 보였던 ‘듀로’의 실제 경기력이 드러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간 ‘잘 닦여 있던 길’에서만 움직였던 ‘듀로’가 오프로드를 걷다 보니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경기력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랄까. 최근 듀로의 경기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이전 ‘페이즈’의 경우처럼 듀로 또한 젠지라는 탄탄한 틀 속에서 버프를 받고 실력 이상의 결과물을 냈지만, 그 ‘버프’가 사라지면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덧붙여서 젠지가 어째서 젊고 연봉도 더 싼 페이즈 대신에 25시즌 룰러와 계약을 했을까. 당연히 팀 입장에서 페이즈보다 룰러가 더 좋은 활약, 그리고 롤드컵 우승에 더 적합한 선수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프랜차이즈 스타’ 라거나 이름값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젠지의 판단에(자신의 팀에서 뛰면서 만들어진 수 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룰러가 페이즈보다 더 나은 선택지였다는 뜻이다.
물론 현재는 조세 회피 사건으로 인해 아쉬운 결과가 나온 상황이지만 젠지는 유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페이즈의 실력을 과대 평가하지 않았다. 25시즌 JDG에서도 그러했고, 실제 올 시즌 페이즈의 경기력 또한 하위권 수준이다. 이번 사건을 떠나 젠지의 룰러 선택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다.
- ‘플랜 B’의 부재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젠지는 오직 단 하나의 승리 루트만을 가동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기인이 캐리를 하는 상황이 나오기도, 캐니언이나 룰러가 판을 집도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경기는 ‘쵸비가 해 주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쵸비 중심의 팀 롤 분배에서도 드러난다. 여타의 팀들은 이처럼 극단적인 ‘원 플랜’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만큼 메타 변화나 다양한 환경 요소에 대한 유연성이 부족하고, 상대가 노리고 들어올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라이엇 게임즈)
젠지처럼 원 플랜으로 운영하는 팀이 바로 BNK 피어엑스다. 피어엑스는 ‘디아블 올인’ 이라는 하나의 승리 공식을 맹목적으로 사용한다. 공교롭게도 원 플랜을 사용하는 두 팀 모두 FST에서 G2에게 3대 0 패배를 당했다. 그리고 이번 정규 시즌에서도 두 팀 모두 성적이 좋지 않다.
G2는 상당히 창의적이면서도 다양한 스타일을 시험하는 팀이다. 당연히 여러 승리 플랜을 갖추고 있고 그만큼 메타 변화와 같은 부분에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다.
실제로 리그에서 큰 힘을 쓰지 못하는 G2와 국제전의 G2는 완전히 다른 팀이다. LCK에서는 강하지만 국제전에서는 약한 젠지와는 반대의 모습인 셈이다.
롤드컵에서 젠지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상대는 세세한 것까지 바꾸고 보완하며 경기를 하지만 젠지의 큰 틀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나 롤드컵 같이 시시각각 메타 해석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팀의 경직성은 커다란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
현재 시즌도 그렇다. 정규 시즌 역시 룰러 사건의 여파로 선수들의 폼이 살짝 떨어지자 굳건하다고 생각됐던 젠지의 승리 공식이 완전히 파훼됐다. 이 말은 앞으로 폼이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플레이가 생각보다 깨질 가능성이 높고, 이미 균열도 간 상태다. 더 단단하게 보강하거나 아예 새로 짓지 않는다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아직도 많은 팬들은 룰러 사건 여파가 가라앉고, 선수들의 폼이 돌아오면 다시금 무적의 젠지로 돌아올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미 젠지의 플레이에 대한 대응 방식이 어느 정도 나왔다고도 볼 수 있고, 그만큼 이후로도 과거보다 더 치열한 경기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현재의 승리 패턴이 롤드컵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된 만큼 젠지가 현재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한다면 올 시즌 롤드컵 역시 우승은 고사하고 결승에 진출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젠지가 현재의 상황을 넘기 위해서는 플랜 B, 혹은 플랜 C 같은 다양한 루트가 필요하다. 지금 같은 쵸비 몰아주기 방식의 획일적인 플레이로는 롤드컵 우승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다만 이 과정이 결코 쉽거나, 단시간에 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올 시즌 젠지의 전망이 밝지는 않다. 룰러 사건의 여파, 그리고 젠지라는 ‘팀 자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기는 것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고 말이다.
T1이 정규 시즌에는 압도적이지 않지만 왜 롤드컵 우승을 3년 연속으로 하고 있을까. 바로 롤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는 길을 시즌 내내 열심히 찾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젠지는 움직임이 없다. 시즌 초부터 롤드컵까지 항상 같은 루트다. 이것이 젠지와 T1의 가장 큰 차이다. 젠지가 롤드컵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더 부지런해지고, 달라져야 한다.
김은태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