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이봄 기획, TRPG 기반 유저가 주인공이 되는 시나리오 만들기

근데 이제 제한된 선택지를 곁들인
2021년 06월 11일 22시 30분 37초

2021년 NDC 마지막날 넥슨코리아 신규개발본부 소속 이봄 기획자가 '제한된 선택지로 유저가 주인공이 되는 시나리오 만들기'라는 주제의 세션을 진행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소설과 다른 게임만의 특징은 직접 조작하고 그 결과를 확인하는 매체다. 때문에 그들과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본 세션에서는 게임 시나리오만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 유저가 주인공이 되는 시나리오

 

게임 시나리오는 유저의 선택을 통해서 생성되는 스토리의 집합이다. 타 매체와는 다른 게임 시나리오만의 강점을 살리려면 유저의 선택이 반영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유저가 주인공이 되는 시나리오다. 좀 더 구체화하자면 유저의 선택이 '의미 있게' 반영되는 시나리오다. 여기서 의미가 있다는 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시나리오를 말한다. 같은 스토리라도 일직선으로 진행하느냐, 분기에 따라 갈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유저가 몰입하게 되는 시나리오의 구성은 유저의 선택이 시나리오에 반영되고 풍부한 피드백과 함께 돌아오는 것이다.

 

모든 게임의 시나리오를 다 분석할 수는 없으니 시나리오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 번째 기준은 완성도를 추구하느냐 자유도를 추구하느냐, 두 번째는 플레이어가 주역이냐 관전자이냐에 따른다. 이 두 기준에 따라 탐험형, 책임형, 감상형, 창조형 시나리오로 구분한다.

 

탐험형에서는 유저가 캐릭터의 입장에서 이미 완성된 스토리 중 보고 싶은 스토리를 선택하게 된다. 이야기를 보는 순서 정도를 결정할 수 있는데, 탐험형 게임의 예로는 오브라 딘 호의 귀환을 들 수 있다. 사건의 진상이 바뀌진 않지만 어떤 오브젝트를 고르느냐에 따라 오픈되는 순서가 다른 경우다.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위해 유저의 자유도를 어느 정도 제한한 것이다.

 

책임형에서도 유저가 캐릭터의 입장에 서게 되며 보고 싶은 스토리를 선택하고 탐험형과 달리 유저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바일 게임 '영원한 7일의 도시'가 이에 속하며 흔히 미연시라 부르는 장르가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유저는 원하는 캐릭터를 선택해 그 캐릭터와 다양한 관계 엔딩을 보게 되는데, 유저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바뀌니 가장 게임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유형이라 할 수 있지만 하나의 스토리에 다양한 분기를 넣어야 하기에 그만한 개발비용이 들어간다.

 

감상형은 유저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완성된 스토리를 즐기는 게임이다. 순서나 분기를 선택할 수 없다. '투 더 문'이 이 유형의 예시다. 유저는 닐 와츠라는 과학자의 행보를 따라가는 역할이다. 퍼즐 요소가 있지만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일직선으로 진행된다. 유저가 완성된 스토리를 즐기는 건 장점이나 자유도가 거의 없다.

 

끝으로 창조형은 유저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캐릭터와 스토리까지 직접 만드는 유형이다. 게임 시나리오 유형으로 분류하기엔 어려운 장르라 생각하나 유저들이 스토리를 만드는 도구로 쓰면서 즐기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더 심즈' 시리즈나 다양한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그렇다. 심즈 시리즈를 이용해 스크린샷을 찍어 연재를 하는 유저들도 많았을 정도다. 유저의 자유도를 챙기는 대신 시나리오의 완성도와는 연이 없는 유형이며 사람에 따라 즐기는 정도가 달라진다.

 

 

 

■ 유저가 주인공인 시나리오의 난점

 

첫 번째론 개발 비용 대비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개발 비용이 충분하면 유저의 선택에 대응하는 다양한 분기를 만들 수 있지만 대개 개발 비용이 제한적이므로 그런 선택은 쉽지 않다. 컨텐츠의 볼륨이 중요한 모바일 시장에서는 시나리오의 양을 늘리는 걸 훨씬 선호한다.

 

두 번째 이유는 유저 자유도와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양립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유저가 자유로우려면 플롯에 구애받지 않아야 하며 완성도 있는 스토리를 제공하려면 완성된 플롯이 필요하다. 둘 중 하나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발 비용의 문제까지 생각하면 대개는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선택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게임 시나리오만의 장점을 살리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TRPG를 통해 얻게 된다.

 

 

 

■ TRPG 시나리오

 

TRPG는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이다. PC가 아닌 테이블 위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게임이다. 몬스터를 만났을 때 CRPG에서는 준비된 선택지를 골라 액션을 행하게 되는데 TRPG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진행하기 때문에 단지 공격 선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에게 약품을 뿌리고 절벽으로 떨어뜨린다는 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렇듯 커뮤니케이션으로 진행되는 게임이기에 유저의 게임이 아주 자유로운 장르다.

 

그런 점에서 TRPG는 '더블크로스'라는 유저의 자유도와 시나리오 완성도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기에 좋은 매체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더블 크로스'라는 작품을 예시로 분석했다. 더블 크로스는 현재 한국에 미정발된 일본 룰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룰이다. 어느 날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되어 세계에 암약하는 졈이란 존재들과 싸운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룰 중 더블 크로스가 선정된 이유는 완성된 시나리오를 제공하고 유저가 플레이할 수 있게끔 한 룰이기 때문이다.

 

즉 유저의 자유도와 시나리오 완성도 사이의 균형을 잡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첫째로 캐릭터를 역할과 표현으로 나눴다. TRPG에서는 플레이어(PL)가 플레이어 캐릭터(PC)를 직접 만들고 그 캐릭터의 입장에서 게임에 참가한다. 이 때 PC를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 핸드아웃을 받고 그를 토대로 PC를 만들게 된다. 이 핸드아웃은 캐릭터를 구성하는 요소 중 시나리오 설정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로 시나리오 설정상 필요한 요소들이 적혀 있고 이 캐릭터가 시나리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적어두게 된다.

 

이를 토대로 유저가 PC를 만드는데 핸드아웃 내용만 충족한다면 얼마든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어 같은 핸드아웃으로도 유저마다 전혀 다른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핸드아웃을 통해 캐릭터를 역할과 표현으로 나누고 유저와 시나리오 사이에 시나리오 핸드아웃이란 개념을 넣어 두 요소를 결합시켰다.

 

시나리오는 캐릭터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 메인 플롯인 줄기와 캐릭터의 표현을 중심으로 한 서브 플롯인 가지로 나뉜다. 메인 플롯은 변하지 않지만 서브 플롯은 유저 형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줄기는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담당하며 가지는 유저의 자유도를 담당하는 구성이라 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연계하느냐가 관건이다. TRPG에선 이것을 커뮤니케이션으로 해결한다. GM과 PL 사이에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시나리오의 줄기와 가지를 연결한다.

 

CRPG의 경우 이 과정이 쉽지 않다.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이것을 처리해야 하는데,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응하려면 수많은 분기와 데이터가 필요하고 개발 비용 문제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여기서 관점을 바꿔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자면 피드백의 양이 많아야만 유저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의 질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 경정되는 것이 피드백의 질이다. 게임 시나리오에서는 유저가 하는 이야기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 라는 것이 된다.

 

즉 유저가 하고 싶은 말을 담은 선택지와 유저가 듣고 싶은 말을 담은 피드백을 만드는 것이 게임 시나리오 피드백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시도가 필요했다.

 

 

 

■ 테스트와 결과

 

테스트는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눠서 진행됐다. 캐릭터 타입과 선택지 타입으로, 각각의 테스트에서 얻은 결과를 종합해 피드백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테스트의 기반이 되는 아주 간단한 베이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두 개의 타입, 다섯 가지의 버전을 만들어 테스트한 결과물로 유저가 하고 싶은 말을 담은 선택지와 유저가 듣고 싶은 말을 담은 피드백을 정의할 수 있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의 남성 4명과 여성 8명으로 구성된 총 12명이 테스트에 참여했다. 캐릭터 타입에 대한 설문 결과 캐릭터의 표현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의 변화를 느낄 여지가 있으며 유저가 재미를 느끼는 표현 요소는 친금감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외관이나 신상명세만이 아닌 다양한 서사적 요소를 캐릭터 메이킹 시 선택 가능한 표현 요소로 다뤄 유저가 공감할 수 있는 표현 요소로 제공했을 때 선택의 결과에 만족하는 양상을 보였다.

 

선택지 버전의 테스트에서는 즉답형과 의견형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한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즉답형에서는 결과에 만족할 수 있고 의견형은 과정에 몰입하는 경향을 보였다. 둘의 강점을 합치면 시나리오 안에서 유저가 생각할만한 문제를 선택지로 표현하고 선택을 즉각적인 피드백으로 받아주는 방식이 성립할 수 있다.

 

이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시나리오 분기가 많지 않은 상황에도 유저의 선택이 의미를 가지는, 유저가 주인공이 되는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이봄 기획자는 "좋은 게임 시나리오란 어쩌면 유저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는 대리 창구가 될 준비가 갖춰진 시나리오가 아닐까"라며 "그런 시나리오를 쓰자고 마음먹는 것부터가 아마 좋은 시나리오 라이팅의 시작일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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